할리우드도 못 뚫는 '문화 강국' 이탈리아, K드라마는 통했다
지난 14~17일 소렌토에서 열린 ‘제1회 K드라마 페스타 소렌토’는 이탈리아의 한류 붐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탈리아 제1의 대학으로 꼽히는 로마 라 사피엔차대학과 백봉정치문화교육연구원(이사장 라종일 전 주일본·영국대사)이 올해 양국 수교 140주년을 맞아 개최한 이번 행사는 K컬처 중에서도 특히 K드라마를 주제로 한 첫 국제 페스티벌이란 점에서 주목을 모았다.
안토네타 브루노 라 사피엔차대 한국학과장은 “이탈리아는 4~5년 전부터 K드라마 인기가 급상승하기 시작해 지금은 유럽 내에서도 한류 팬덤이 단연 최고”라며 “K컬처 열기에 한국학과 지원자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720년의 역사를 지닌 라 사피엔차대는 2001년 한국학과를 설립한 뒤 학부부터 석·박사까지 전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학생만 500명에 달한다.
이 같은 열기를 반영하듯 이번 행사에도 현지 한류팬 200여 명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이탈리아 공영방송인 라이(RAI) 등 현지 언론들도 스페셜 게스트로 참석한 배우 오정세·예지원·김혜은·유준상씨와 ‘킹덤’ ‘시그널’ 등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 ‘범죄도시’를 제작한 장원석 BA엔터테인먼트 대표, 영화 ‘1947 보스톤’의 강제규 감독을 인터뷰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행사도 팬들과의 대화, K드라마 어워즈, K드라마·영화 상영뿐 아니라 양국 학자들이 모인 국제학술포럼과 한식 시식 코너, K팝 댄스 시범 등 다채롭게 구성돼 눈길을 끌었다.
행사장을 찾은 클라리사 미올리(22)는 약간은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한국어로 “7년 전 영화 ‘올드 보이’를 보고 K컬처에 빠져들었다”며 “친구들 중에도 한류팬이 엄청 많은데, 대부분 K팝을 통해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한 뒤 자연스레 K드라마와 영화도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 전했다. 곁에 있던 마리나 팔마스(23)도 “K드라마가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TV에서도 더빙으로 방송하고 있고 요즘은 OTT로도 쉽게 볼 수 있어 틈나는 대로 즐겨 보고 있다”며 “한국 음식도 우리 입맛에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한류 스타들도 “이탈리아의 K컬처 열기가 상상 이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예지원씨는 “한류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게 된 건 열악한 환경에서도 잠도 안 자며 열정 하나로 작품에 몰입한 선배들의 땀이 축적된 결과”라며 “우리도 더욱 열심히 해서 후배들에게 한 단계 더 발전된 K컬처 문화를 물려주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오정세씨도 “시네마천국 등 이탈리아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랐는데 이젠 이탈리아 사람들이 K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한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며 놀라워했다. 김은희 작가가 팬들과의 대화 도중 인기 드라마 ‘시그널’ 시즌2를 제작한다고 밝혔을 때는 객석에서 큰 환호성이 터지기도 했다.
라종일 이사장은 기조연설에서 “전쟁으로 황폐해진 땅에서 미국 대중문화를 접하며 성장한 할리우드 키즈가 이젠 K한류를 통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며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K컬처도 오랜 기간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쌓인 것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라 이사장은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듯 이제 첫발을 뗀 만큼 내년 행사도 보다 내실 있게 준비해 양국 문화 교류 확대와 한류 확산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소렌토=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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