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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나이를먹는다는것은점점더자기주변에서자기와 같은 사람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어릴수록 우리는 일정 위치나 역할을 갖는사람만을알고있다.그저경쟁자나친구,또는부모나형제,선생님등에불과한것이다.

어떤영국인여류작가가가족이함께살수있는비결은완고하고때로는고의적인의사소통의실패 때문이라고 시사한 것을읽은 기억이 난다. 그렇게 늘 가깝게 있었으면서도 어째서 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는지, 그리고 어째서돌아가신이후에세월이갈수록아버지는내마음속에더큰자리를차지하셔서거의매일아버지와대화를나누지않고는하루가지나가지않는것인지.아버지가결코이해하지못하시는것은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를 막론하고 광신주의였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이 세상과사람의삶에크나큰기대를하는사람들을거의연민에가까운심경으로바라보시곤 하였다. 그것은 때로는 냉정하거나 오만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차디차보이는겉과는달리그분이얼마나따뜻한마음을갖고자기주변의사람들을대하셨는지나는안다.

아버지가 싫어하셨던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주전자를 들려서 술을 받아 오라고시키는어른들,담배심부름을시키는어른들,길에침을뱉는사람들,집의닭이 낳은 달걀을 애들에게 먹이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장날에 팔아서 술을 마시고집에돌아오는사람들,천국이눈앞에있다고떠드는사람들,세상을뜯어고쳐서낙원을이루겠다는사람들이었다.어떻게그렇게도세상일반에대한잘통제된 비관과 주변에 대한 사랑을 한꺼번에 갖고 있으셨는지. 아버지는 선거 구민에게그당시흔히들하는것처럼집에서숙식을제공하는일이없었다.뿐만 아니라 선거구민을 밖에서 만나는 것으로 끝내고 집에 오도록 하시지 않았다.그래서가족들은선거를모르고지냈다.특별히친한사람몇을제외하고는집에 오는 선거구민은 없었다. 선거유세 중에도 예의범절 등을 들어 유권자를꾸짖는발언을흔히하셨다.그러고도어떻게아직까지도그구역최다선기록을갖고계실수있었는지.어떻게보면사람의일생이란죽을때까지자기아버지를찾는것인지모른다.유리태자처럼,혹은예수님처럼…

라종일, 세계일보 1992. 7. 20